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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波瀾萬丈)한 인생

리마즈로 2019. 7. 9. 18:58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인생

 

미국 육사 교과서에 수록한 한국인 영웅

 

임종덕 8-7 연이어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2

 

박정희 대통령의 가계도

 

박정희는 19171114(930)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동 171번지에서 아버지 박성빈(朴成彬)과 어머니 백남의(白南義) 사이에서 7남매(52)중 막내로 태어났다

 

박정희의 집안은 선대부터 무인(武人)이 많았다. 보수기질이 강해서 때때로 엉뚱한 인물이 나오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조선시대의 박은(朴誾)과 박문수(朴文秀).

 

박문수는 억압받은 민초들에게 태양 같은 희망이요 생명의 불꽃이었다. 그리고 사회정의를 구현하여 암행어사(暗行御史)의 행각으로 민중들의 뜻을 대변했다.

 

어전(御前)에서 머리를 치켜들고 아뢰는 사람은 박문수뿐이었다. 영의정이 나무라자 "임금과 신하는 한 몸이나 다름없는데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 안 되냐요? 임금도 문수의 말이 옳다" 하였다. 박정희도 선대의 피를 이어받은 분이다.

 

박정희의 어머니 백남의(白南義)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집안은 고려 때 대학자 백이정(白滯正)의 후예다. 선조의 체통을 지키기 위하여 어린 자녀들에게 삶의 법도를 엄하게 가르쳤다.

 

어머니는 45세에 박정희를 임신했다. 자식이 생기면 일곱이다. 자기 혼자도 먹고살기 힘든 시절인데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오니 남사스럽기도 하고.

 

하루는 장독대 씨 간장을 바가지 가득 마시고 어느 날은 뒷산 언덕배기에서 눈을 감고 굴렀다. 그래도 배가 남산만 했다 그러다가 몇 달 이 지나자 가을 무 뽑듯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52녀 중 막내다. 형제간들은 하나같이 6척 장신인데 막내는 어머니가 뱃속의 태아를 모질게 학대해서인지. 못 먹여서인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다 커도 5척 언저리다. 그러니 어머니는 늘 안쓰러워서 막내에게 콩 한쪽이라도 더 먹였다.

 

"큰 인물은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나온다는 말을 실감하였습니다. 내가 대구사범학교 시절에 박정희의 집을 방문하여 하룻밤 묵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60세가 넘었는데도 미인이었습니다. 몸집은 자그만하였지만 빈틈이 없고 자상하면서도 온화한 풍모가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이었습니다.

 

남편 대신 살림을 해야 하는 어머니는 봄바람처럼 훈훈하고 다정하면서도 서릿발 같은 기품이 있어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막내를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모든 것을 자식에게 주고 간 분입니다. 그것이 대통령을 키워낸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동기생 권상하(權尙河)의 말이다.

 

인간 박정희

 

한일협정이 물밑에서 논의되던 때였다. 상대를 알아야 이길 수 있는 법. 그래서 일본은 박정희를 속속들이 조사했다. 그 결과 박정희의 일본 육사 선배 중에 하나를 골라 특사로 보냈다.

 

체구가 왜소하고 성격이 침착한 박정희에게 대적할 상대로 그와 상반되는 인물을 골랐다. 성격이 포악하고 교활하며 불같이 급한, 6척 거한을 보낸 것이다.

 

고토 마사유키, 스스로 쇼와시대 이후의 최고 사무라이로 자처하는, 정재계를 주름잡은 일본 최고의 모사꾼이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상대방을 협박하고 안 되면 설득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재주가 비상한 사람이다. 큰 체구에 매서운 눈빛과 거친 말투로 좌중들은 사로잡는 무서운 놈이다.

 

특사 고토 마사유키의 임무

 

인체 생체시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에서, 연구하여 완성한 제약기술을 이전하는 대가로 독도를 달라는 것이다.

 

그를 특사로 보내면 독도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봐도 된다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일본 조야에 팽배하였다.

입버릇처럼, 조선 놈들이 하는 짓이란! 뻔하다. 근성이 없어, 근성이! (죠센진토 이우 모노와 곤죠가 타리나이)

 

그런 그가 서울에 와서 박정희를 만났는데. 일성이 가관이다. “나에게는 장군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소. 아마 조용한 생도였겠지처음부터 무시하는 전략이다.

 

"당신이 내 기억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오늘 여기서 당신과 만나는 일을 없었을 겁니다. 본론을 말하시죠.“

 

역시 듣던 대로시군요. 아무튼 장군! 바보 같은 놈들이 다케시마(독도) 같은 하찮은 문제로 우리들의 발목을 잡으려 하오

 

하찮은 것이라고 함부로 말하며 교활한 너구리는 슬슬 본론을 꺼냈다. 나라를 부흥시키려면 무엇보다 의약분야의 최신기술을 확보하는 것이오.

 

내일 당장 신문에 내시오. 일본의 최신기술을 이전 받기로 합의하고 공장도 지을 거라고 말이오. 그러면 민심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케시마(독도)는 바보 같은 놈들에게 물고기나 잡으라고 주어버립시다. 은근슬쩍 본론을 말한 것이다.

 

"이봐요 당신! 나는 목숨을 걸고 혁명을 한 사람이오. 무슨 개수작이요? 나는 오래 전부터 내 조국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하기로 결심을 했소. 그것이 독도이던 돌 한 조각이던 내 조국의 것이라면 나는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요. 군인인 내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것 밖에 무슨 일이 있겠소?"

 

순간 6척 거한이 왜소한 박정희의 기세에 찍소리도 못했다. 수많은 야쿠자들과 정계의 깡패들을 상대하면서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두려움을 이 작고 깡마른 사나이에게 받은 것이다.

 

정신을 차린 그는 다시 협박을 했다 "장군! 흥분하지 마시오. 장군의 조국에 대한 충정은 이해를 하오. 하지만 작은 것을 보면서 큰 것을 못 본다면 그것은 장군답지 못합니다. 대의를 보시오. 자칫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소"

 

자기 제안을 받지 않는다면 모두 잃게 될 것이라는 으름장이다.

 

"이봐, 당신! 아까부터 자꾸 나에게 훈계하려고 드는데, 당신도 사나이라면 싸움으로 결판을 냅시다. 덜 맞은 자의 말을 따르기로 하면 될 것 아니겠소. 어차피 당신은 나와 싸우기 위해서 온 사람이니까?"

 

박정희는 술자리에서 고토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아시오?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난 덕분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오. 사나이로서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어디 있겠소?

 

돌아가서 전하시오. 다들 목숨을 걸고 조국을 부흥시켜 일본 같은 나라를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어른들끼리 응석부리지는 말자는 말이요“ 6척 거한에게 응석이라니? 이런 표현은 상대를 무시하는 말이다.

 

이 말 들은 고토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면전에서 자기에게 어린애 같이 응석부리지 말라고 하는 박정희의 눈빛에는 사나이의 비장함이 있었다.

 

동경으로 돌아온 고토는 동료들에게 박정희는 조국을 위해서 죽기로 했다는데, 자네들 쌍판대기를 보니 어느 누구도 죽을 각오가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이야! 어떻게 다케시마를 찾을 수 있겠어.”

 

박정희가 궁정동에서 김재규에게 암살당한 날. 그는 아카사카의 한 술집에서 다음과 같이 울부짖었다고 한다.

 

빠가야로. 조센진토 이우 야쓰라와 쇼가나인다나. 지분의 오야붕을 고로시테 도우 스룬다요..

 

이 병신 같은 놈들아! 니들이 하는 것들이야! 어쩔 수가 없구나. 두목을 죽이면 졸개들은 어쩌란 말이냐? 박정희는 그대들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다. 박정희를 알고 나서 내 생은 기쁨으로 가득했는데. ! 즐거움이 사라지고 말았구나. 재미없는 세상 이제 어떻게 살지?

 

눈을 부릅뜬 조선 호랑이가, 쓰레기 같은 일본 원숭이를 단 칼에 베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병신들. 오호 통제라! 마지막 사무라이가 죽었구나! 실은 나도 몸에 조센징의 피가 흐르고 있어. 조국이 조선이야

 

일본과 경쟁을 하면서 힘을 키워 경제발전을 이룩하고자 한 박정희의 꿈은 마지막 사무라이가 죽고 말았다.’는 고토의 울부짖음과 함께 끝이 났다.

 

사랑하던 손녀를 교통사고로 잃은 충격으로 자살한 고토가 마지막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박정희 장군의 친필휘호 우국충정이었다.

 

육영수 여사와 아카시아 꽃

 

북한 동포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쇠고깃국에 이밥을 실컷 먹어 보는 것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절박하면서도 가슴 아픈 일인가? 그들이라고 왜 고대광실에 천석꾼으로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꿈을 갖기에 그들의 처지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사치스런 바람은 모두가 언감생심이다.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도, 불과 삼사십년 전에는, 쌀밥을 배부르게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때는 인구는 많고 식량은 부족해서 밤나무 같은 유실수를 권장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70년대 초였다. 아카시아가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핀 어느 5, 성남에 산다는 한 아주머니로부터 청와대 육영수 여사 앞으로 한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들 부부는 서울역에서 행상을 하며, 다섯 식구 입에 겨우 풀칠을 하고 살아가는데 얼마 전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어, 가족이 굶고 있다고 했다.

식구들은 그렇다 치고 80세가 넘은 시어머니가 아무것도 모른 체 마냥 굶고만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합니까? 하는 사연이었다.

그때만 해도 육영수 여사는 이런 편지를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았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 주셨다.

편지를 받은 그날 저녁에, 나는 영부인의 지시로 쌀 한 가마니와 얼마간의 돈을 들고 그 집을 찾아 나섰다. 지금의 성남은 몰라보게 달라진 신도시가 되었지만 그때는 철거민들이 정착하는 곳이다. 도로정비가 되지 않아 집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수소문 끝에 그 집을 찾아갔다. 마침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저녁상을 받고 있었다. 나는 청와대에서 찾아왔노라고 말하고 어두컴컴한 방으로 들어갔다. 집이라야 희미한 촛불 하나로 겨우 한 칸 방을 밝힐 뿐이었다. 거의 쓰러져가는 조그만 움막이었다.

방 아랫목에는 머리가 하얀 노파가, 누가 찾아 왔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밥을 먹고 있었다. 밥상 위에는 수북한 흰 쌀밥과 멀건 국 그리고 간장 한 종지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쌀이 없어 끼니를 굶고 있다고 하더니, 하늘에서 돈이라도 떨어졌다면야. 감자나 옥수수를 사서 식량을 늘려 먹을 생각은 안 하고 흰 쌀밥이 웬 말인가?

그러게 생각하면서 한참 앉아 있으려니까, 방안에서 희미한 물체가 하나 둘 눈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크든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가 열심히 드시고 있던 것은 쌀밥이 아니라 산비탈에서 나는 아카시아 꽃이었다. 그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 나에게도 저런 할머니가 계셨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집을 나왔다.

박 대통령 내외분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말씀 드렸더니, 영부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대통령께서도 처연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씀이 없이 천정만 쳐다보시면서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굶주림만은 반드시 내 손으로이런 결심이었으리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야 하겠노라고 하는 처절한 결심을 하시지 않았을까?

매년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어린 시절 동무들과 함께 뛰어놀다, 배가 고프면 허겁지겁 아카시아 꽃을 따먹던 추억이 아른거린다. 그 할머니의 모습과 겹치면서

 

전 청와대 비서관 김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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