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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청백리 34인

조선시대의 청백리 34인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가장 긴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시대에 사대부로서의 권위와 풍족함을 마다하고 국가의 녹봉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국민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대표적인 청백리 34인의 면면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여기서 소개드리고자 하는 인물들 중에서 몇 분은 상세한 역사적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그 분들의 생애에 대해 자료를 발췌하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알려진 분들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소개드립니다. 1. 황희(黃喜, 1363~1452) 황희는 공민왕 12년(1363년)에 개성에서 판강릉부사 황군서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네 살 때인 우왕 2년 (1376년)에 음직으로 복안궁 녹사가 되었고, 스물한 살에 사마시에 합격하였..

최근세사의 재인식(3)

최근세사의 재인식(3) 朴暎根 논설고문ㆍ신중년사관학교 명예총장 독일은 우리나라에서 광부가 가기 전에 유고슬라비아, 터키, 아프리카 등지에서 많은 광부들을 데리고 왔었다. 이들은 아주 나태하여 결국 광산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광부들이 투입되면서 생산량이 엄청나게 높아지자 독일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였고, 이렇게 근면한 민족을 처음 봤다면서 한 달 급여 120달러에 보너스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한편 왜, 간호사가 필요하였느냐? 국민소득이 올라가니 3D 업종이나 힘든 일은 기피하는 현상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특히 야간에는 일할 간호사가 없었다. 특근수당을 많이 준다 하여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한국 간호사들에 대하여서는 아주 후진국에서 왔는데 일을 맡길 수 없다하..

최근세사의 재인식(2)

최근세사의 재인식(2) 朴暎根 논설고문ㆍ신중년사관학교 명예총장 이 때 서독은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간 상태로 차관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협상도 하고 구걸도 할 수 있는데,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는 한 사람도 없었으니 당시의 우리수준이 어떠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독일 대사관에 연락하여 수소문 한 결과 한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 분이 현재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백영훈 박사다. 전북 김제 출신으로 26세 때,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독일 뉘른베르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귀국 후 중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최고회의에서 찾아 갔으나 병력미필자라 하여 논산훈련소에 입소, 훈련 중이었다. 정부는 훈..

최근세사의 재인식(1)

최근세사의 재인식(1) 朴暎根 논설고문ㆍ신중년사관학교 명예총장 Ⅰ. 머리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왜냐하면 과거라는 카테고리 속에는 수많은 경험이 농축되어 있고, 이 농축된 경험이 집약되어 하나의 역사를 형성하기 때문에 역사의 정확한 분별력이야말로 공동체가 선택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일부 계층에서는 우리 역사를, 특히 최근세사를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왜곡하는 것이 지식인의 당연한 책무인 것처럼 행위하고 국민을 오도하는 패배주의적 사관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 역사는 부정적인 것만이 전부일까? 국토의 분할, 친일파 문제, 민족 간의 전쟁, 군사 혁명, 독재체제, 광주사태, IMF 경제 환란 등이 우리 것의 전부일까? 어느 민족이나, 어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