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수엘라. 그리스. 아르헨티나가 망한 이유
■ 베네수엘라(Venezuela)는 석유로 돈이 넘쳐 날 때,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았던 나라이다. 그래서, 정제한 석유 품질이 안 좋아서 국제 유가가 8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수출이 안 된다. 2019년 현재 국제 석유 가격 베럴당 50-60 달러 정도이다. 또한, 원유 팔아봐야 정제비 30달러를 빼면, 겨우 20-30달러 남는다. 최고의 산유국이지만, 원유 정제 기술이 부족해서 질이 떨어지는 석유를 팔았다. 이것이 베네수엘라의 폭망의 원인이다. 2018년, 생필품의 물가가 무려 13.000배가 올라서, 한달 월급으로 밥 한끼 사 먹으면 없다. 국경을 넘는 탈출 이민자가 400만명을 돌파했다.
★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이며, 석유가 베네수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80% 이상이다. 외화 수입의 90%가 석유였다. 석유 팔아서 먹고 사는 나라이다. 산유량은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 4위였다. 그래서, 베네수엘라(Venezuela)의 국민들은 1990년대 이전까지 매우 풍요롭게 살고 있었다. 우고 차베즈(Hugo Chavez)는 1999년부터 2013년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그는 석유 생산을 전부 국영 기업이 하게 했고, 해외 기업들은 쫓겨나가게 됐다. 2012년 유가가 폭등하면서 베네수엘라는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때부터 본격적인 비극이 시작되었다. 우고 차베스는 벌어들인 돈을 무상 주택 건설, 식비 보조 등 복지에 전부 쏟아 부었다. 그는 무상 의료, 무상 교육, 무상 주택 등의 과감한 복지 정책을 단행했다. 이를 위해 상류층의 세금을 올려서 상류층의 반발이 엄청났고, 그들은 해외로 이민 나가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지지율은 60%를 기록했다. 오히려 상승해갔다. 그 이유는 바로 석유였다. 2013년, 우고 차베스는 암으로 사망하고, 부통령이었던 니콜라스 마두로(Maduro)가 부임했다. ★ 차베즈 대통령은 미국(美國)과의 단교까지 언급하며, 미국에 대해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고,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차베즈 대통령의 반미(反美) 행보를 용감하고 멋있다고 평가했다. 2013년,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국은 본격적으로 셰일 오일을 생산하여 수출하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석유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석유 수출이 국고의 90%이던 베네수엘라는 직격타를 맞았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석유를 채권이든 화폐든 어떤 형태로든 구매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는 국가 경제력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추가 제재를 발동했다. 베네수엘라 정부 및 국영 기업들이 외상 매출금을 매각하거나 자산을 담보로 자금 융통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신규 융자 및 채권 발행을 금지하여 중국 및 러시아 등이 천연 자원 확보를 목적으로 공여하는 금융 지원을 봉쇄해온 종전 조치를 더욱 강화한 것이다. 석유가 안 팔리자 복지 혜택이 무산되었다. 전기가 끊겼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복지에 돈을 쓰느라 소홀했던 생필품. 식료품의 생산 설비가 낙후되어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주민들이 먹을 것이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민은 물론 난민도 증가하였다. 너무 많은 이 난민들을 누가 반길까? 심지어 국경 지역인 브라질로 넘어가다 돌 맞아 죽기도 하였다. ★ 1999년 우고 차베즈(Hugo Chavez) 대통령은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국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체제를 추진했다. 모든 주권은 국민들로부터 오고,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에 국가의 정책을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고 차베즈 대통령은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인터넷 청원 사이트를 운영하며, 국민들과 “소통”하였고, 청원 사이트에서 일정 숫자 이상의 국민들이 요구하는 정책들을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여 입법부를 압박하였다. 국민들의 요구에 대하여 반대하는 의원들은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 적폐 세력으로 매도했다. 이러한 압박으로 인하여 입법부는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국민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차베즈 대통령은 99% 지지율이라는 역대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베네수엘라 역사상 가장 국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 되었다. ★ 차베즈 대통령은 인공 지능의 발전을 강조하며, 인공 지능이 언젠간 사람의 일자리를 모두 빼앗아 많은 사람이 실업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이유로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기본 소득제라는 무상 복지 정책을 추진했다. 차베즈 대통령은 인공 지능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기본 소득제 무상 복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 “사람이 먼저다!(La gente es lo primero)”라는 구호를 확산시켰다. 차베즈 대통령은 기본 소득제를 계속해서 시행하기 위해서는 재벌 기업이 더욱 더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재법 기업들을 압박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차베즈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다!(La gente es lo primero)”라는 구호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을 모두 민주화하도록 요구했고, 차베즈 대통령은 국민의 뜻에 따라 모든 석유 산업을 민주화하였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석유 산업 재벌들을 처벌해달라고 요구했고, 차베즈 대통령은 사법부를 압박하여 석유 산업 재벌들을 처벌했다. 차베즈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따르라고 하며, 사법부를 압박했고, 사법부는 국민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어떻게든 죄명을 만들어 상류층과 재벌들을 처벌했다. 또한, 난민층을 위해 생필품. 식료품의 가격을 동결하였다. 난민들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생필품. 식료품 가격을 동결 때문에 마트 주인 등의 판매자들은 점점 생활고에 시달려갔다. 그래서, 마트 상점 주인들은 아예 장사를 안 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석유 산업에서 발생되는 이익을 무상 복지로 지급하라고 요구했고, 차베즈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에 따라 석유 산업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무상 복지로 지급했다. 차베즈 대통령은 정말로 국민의 뜻에 따라 석유 산업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경제 성장에는 전혀 투자하지 않았고, 국민의 요구대로 무상 복지에 사용했다. 이것에 대하여 입법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적폐 세력이라고 매도했다. 보수 진영은 유가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석유 산업으로 발생한 이익을 경제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보수 진영이 재벌들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보수 진영 의원들을 처벌해달라고 청원했고, 차베즈는 국민의 뜻에 따라 사법부를 압박하여 보수진영 의원들을 처벌하도록 강요했다. 사법부는 국민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어떻게든 죄명을 만들어 반대 목소리를 내는 보수 진영 의원들을 처벌했다. 덕분에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일을 하지 않고도 중산층의 삶을 즐겼고, 지상 낙원을 실현했다. 베네수엘라의 상류층들은 너무 높은 세금에 불만을 품고, 부자들은 미국. 유럽 등으로 이민을 가기 시작했다. 너무 높은 세금에 불만을 품은 베네수엘라의 기업들은 베네수엘라에서 직원 숫자를 줄이거나 자산을 정리하고, 미국. 유럽 등에서 직원 숫자를 늘리거나 투자를 했다. 결국에는 베네수엘라에서 해외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의 상류층들이 해외로 이민간 후, 2010년대 들어 베네수엘라의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10% 수준으로 떨어졌고, 국민들은 더 많은 무상 복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무상 복지를 더 이상 확대하기 힘들어졌다. 상류층들이 이미 다 해외로 빠져나가서 세금을 많이 걷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무상 복지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것에 익숙했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최저 임금 인상을 요구했고, 차베즈는 국민의 요구에 따라 최저 임금을 인상했다. 최저 임금 인상으로 인하여 인건비가 상승했고, 인건비 상승으로 인하여 제품 생산 단가가 상승하면서 엄청난 물가 상승이 뒤따랐다. 물가가 비정상적으로 치솟기 시작하자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시장 경제 가격 통제를 요구했고, 차베즈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에 따라 사회주의 방식으로 가격 통제를 강행하였다. 시장 경제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정부가 개입하여 식재료. 가공품. 서비스. 통신료 등 모든 가격을 책정하기 시작했다. 사업가들은 제품을 생산하는데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해도 정부가 책정한 가격대로만 판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부가 사회주의 방식으로 가격 통제를 하자, 사업장들은 폐업하고 파산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식 가격 통제로 인하여 건설 업체. 유통 업체. 마트. 편의점. 음식점. 옷가게. 통신사 등 모든 사업장이 폐업하였다. 결국 베네수엘라의 식량과 생활 필수품이 모두 바닥났고, 식량 부족으로 인하여 현재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 베네스엘라 노동자들의 한달 봉급으로는 계란 두판 정도 구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성장이 없는 분배 위주 경제 정책은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초근 목피(草根木皮)’로 근근이 살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산간 및 도시 지역을 막론하고 식량난에 시달린 빈민들이 닥치는 대로 야생 동물들을 잡아먹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군부(軍部)는 불쌍한 국민들의 기아(飢餓)와 싸우기보다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사적인 축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대가 암(暗) 시장을 운용하면서, 거의 모든 식료품들을 식품 판매업자들에게 정부가 고시한 가격의 수 백 배나 되는 가격으로 판매하여 부정 축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 2013년 우고 차베즈(Hugo Chavez) 대통령이 암으로 사망하자, 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Maduro)가 직무 대행을 하다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했다. 차베스와 마두로는 젊었을 때부터 공산주의자이고, 쿠바(Cuba) 카스트로(Castro)의 이념적 제자이다. 두 사람은 조국인 베네수엘라 보다 공산 국가 쿠바(Cuba)를 더 좋아했다. 차베스와 마두로는 쿠바의 지도를 받아 베네수엘라를 운영하면서 정권 유지를 위한 보안. 정보. 수사. 군대까지 쿠바의 전문 인력을 파견 받아 핵심 자리에 앉혔다. 쿠바(Cuba)는 베네수엘라의 기름을 거의 공짜로 얻어 쓰는 대가로 보안 요원들을 보내 마두로 정권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베네수엘라의 반미(反美) 정책 및 친(親)쿠바 노선은 남미에서도 고립을 자초하였다. ★ 모든 정치인들은 인기를 얻고 싶어하고, 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장래에 칭송을 받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에 칭찬을 얻는 데 몰입한다. 특히, 포퓰리즘(populism)을 숭배하는 정치인들은 ‘단기 이득’(short term gain) 정책을 선호한다. 이런 오류의 길이 바로 차베스(Chaves) 및 마두로(Maduro) 정권이 지금까지 추구해 오는 포퓰리즘(populism) 노선인 것이다. ■ 아르헨티나 (Argentina)는 포퓰리즘(populism)으로 망한 대표적인 국가이다.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포퓰리즘(populism)을 남발하고 이에 제동을 걸 장치가 점차 무력화될 때, 세상은 아래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경제 선진국이었다. 1914년 해외 진출을 노리던 런던의 유명 백화점인 해러즈 백화점이 1호점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열 정도였다. 1차 세계대전 직전 아르헨티나 국내 총생산(GDP)은 유럽의 강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1946년 후안 페론(Juan Perón) 대통령 집권 이후, 아르헨티나 경제는 변곡점을 맞았다. 1946년 집권 이후 페론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복지 지출을 대폭 늘렸다. 은퇴자 연금을 한꺼번에 올려주고, 국가 예산의 19%를 생활 보조금에 쓰는 등 퍼주기 정책이 일상화하면서 재정이 바닥났다. 아르헨티나는 2019년 지금도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는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21세기 들어 아르헨티나가 첫 외환 위기를 맞은 국가가 된 것도 이 같은 근시안적 경제 정책과 정부의 과도한 재정 지출에 따른 부채 그리고 개혁에 반대한 노조 때문이었다. 1989년 연 5,000%를 기록할 정도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와중에 1989년 당선된 메넴(Menem) 대통령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1991년부터 고정 환율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물가가 안정되는 대신 페소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 주변 남미 국가가 자국 통화를 평가 절하하면서 격차는 더 커졌다. 당시 브라질 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250-300달러 수준이었는데, 아르헨티나 근로자들은 700달러에 육박할 정도였다. 강성 노조도 아르헨티나 정부가 몰락하는 데 일조를 했다. 1999년 12월 취임한 페르난도 데라루아(Fernando de la Rúa) 대통령이 재정 건전성 우선 정책을 펼치자 2001년 07월까지 전국적인 파업이 6번이나 벌어졌다. 2001년 10월 총선 참패로 데라루아 정책은 동력을 잃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2001년 당시 사상 최대 규모였던 1,000억 달러의 국가 부도(모라토리엄)를 선언하면서 국제 금융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이후,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채무 조정을 하며, 국제 금융 시장 복귀를 노렸지만, 원리금을 모두 갚으라며 엘리엇 등의 벌처 펀드(vulture fund)들이 제기한 소송에 패해 2014년 2차 디폴트(default)를 맞기도 했다. ■ 그리스(Greece)의 국가 실패는 더욱 치명적이다. 기득권층을 위한 비포용적 경제 제도가 성장 동력을 앗아감과 동시에 양극화까지 심화시켰다. 결국, 관광업. 해운업 위주 산업 구조, 탈세로 커진 지하 경제, 방만한 공무원 조직과 국민 연금 낭비 확대 등 누적된 모순은 2009년 재정 위기 때 폭발하고 말았다. 이미 복지 확대로 텅 빈 나라 곳간과 방만한 국가 운영은 경제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탄력성(resilience) 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결국, 2010년 구제 금융 신청 이후 지금까지 그리스는 채권단의 긴축 요구와 국민의 반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서민들만 희생되고 있다. 우선 제대로 된 경제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하면서 그리스는 지하 경제 규모만 키웠다. 세금을 내지 않는 그리스 지하 경제 비중은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인 관광 업종에서는 현금으로 돈을 받고, 소득을 신고하지 않는 탈세가 관행화됐고, 해운 회사들은 조세 회피처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선박을 발주하고 운영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전통적으로 제조업 기반이 약했던 그리스는 유로존 편입 이후에는 환율 방어 장치마저 사라지면서 제조업을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경제 성장률은 1971-1980년 연평균 4.2%에서 2005-2015년 0.02%로 급전직하했다. 2016년에는 오히려 GDP가 1년 새 0.05% 후퇴한 것으로 그리스 통계청은 추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이후 그리스 정부는 구조 조정과 성장 동력 회복을 통해 정면 돌파하기 보다는 포퓰리즘(populism) 정책으로 국민 불만 달래기에 치중했다. 포퓰리즘(populism) 정책 중 최악은 성장률 추락과 높은 실업난을 공공 부문 인력 확충이라는 기형적 해법으로 풀었다는 점이다. 공공 부문 전체 인력의 4분의 1이 불필요한 인력이란 추정이 나올 정도였다. 공공 부문 종사자 숫자가 점차 늘고,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기득권이 되면서 자신들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을 늘렸다. 공무원, 법조인을 비롯한 사회 기득권층은 엄청난 연금과 가족 수당, 국가 의료 서비스 혜택을 받지만, 시간제나 계약직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은퇴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은 연금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