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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晩鐘)'에 얽힌 슬픈 이야기

리마즈로 2020. 7. 27. 13:58

 

 

밀레의 '만종(晩鐘)'에 얽힌 슬픈 이야기

 

 

 

밀레의 '만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림입니다.

그 그림이 밀레의 대표작이라서가 아니라,
초등시절부터 미술 교과서에서 익히 보아 왔던
그림의 원본을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루브르 박물관에 있었던 다른 나라 관람객들도
'모나리자'와 '만종' 앞에 유난히 많이 몰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때 이 그림 속에
아주 슬픈 사연이 숨어 있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 그림에 숨어있는 슬픈 이야기는
귀동냥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한 아는 분이

바르비종 마을 사진과 사연을 보내왔어요.

그래서 글과 사진을 정리하고
다시 편집해 보았습니다.

혹시 앞으로 밀레의 '만종'을 보시게 되면
이러한 숨은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그 그림을 감상해 보시면 좋겠다 싶어서요.

똑같이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어도
그 배경과 숨은 이야기를 알고서 감상하는 것과
모르고 감상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또한 '아는 것만큼 보이고,
아는 것만큼 즐길 수 있다.'는 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프랑스 화가하면 떠오른 사람은 밀레이고,
밀레하면 만종, 이삭줍기, 씨뿌리는 사람 등
명작들이 바르비종( Barbizon) 마을에서 그려졌다고 합니다.

 

 


바르비종 마을 앞 명작을 탄생시킨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넓은 경작지.
밀레는 저 먼 숲 근처에서 화필을 들었을 것입니다.

 

 

 


바르비종 마을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

 

 

 

바르비종 동구

 

 

 


바르비종 뒤편 마로니에가 무성하다

 

 


바르비종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바르비종 안길 양편은

옛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밀레가 사용했던 화방 , 지금은 유물 전시장 활용

 

 

 

 

 


밀레화방 입구 이 전시실에는

여러가지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바르비종은 관광지화되어 고급 휴양지로 변모되고
명작 진품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 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 게 불가능한 보물이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60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에 불과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한다.

이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만종'이다.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 만에 80만 프랑 값어치를 얻었고
그로부터 또 1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된 것이다.

1,000 프랑을 지원한 것이 국부(國富)를 일구어 낸 것이다.
루브르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다.

프랑스 측은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한 채 주저앉아 있을 무렵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 만종' 을 다시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가 없었다면
"만종"은 지금쯤 미국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작품이다.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다.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 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바로 '만종'이다.

그런데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 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정말 남달랐다.
밀레의 '만종'을 보면 누구라도
신성한 노동후의 고요한 정적과 평화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고
'달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맛보았다.
그 불안감이 얼마나 집요하게 그의 뇌리에 달라붙었는지
' 달리'는 오랫동안 그 까닭을 알아내려 했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했다.

​' 달리'의 직관은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감자 자루를 어린 아이의 관으로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수십 년 후,
이러한 '달리'의 투시력은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정확한 관찰이었음이 밝혀졌다

루브르 미술관이 자외선 투사작업을 통해
그 감자 자루가 초벌 그림에서는
실제로 어린아이의 관이었음을 입증한 것이다.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나 루소의 활동무대였다.

파리의 아틀리에 틀어 박혀서
아카데믹한 그림만 그리고 있는 어용화가들과
인연을 끊고 농촌으로 이주해 움직이는 농민의 모습을 그린
테그드로, 루소, 밀레, 디어스테라페나 등의 미술혁명가들이
농민과 함께 생활하던 곳이다.

 

Jean-françois Millet French, 1814-1875(자화상)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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