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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100살 넘는 노비가 흔했던 이유

리마즈로 2018. 4. 14. 15:25


조선시대에 100살 넘는 노비가 흔했던 이유 5년마다 한 번씩 실시되는 인구주택총조사, 경험해 보셨나요? 인구주택총조사는 말 그대로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중인 모든 인구를 조사해 총 수와 연령, 가구 형태 등을 파악하는 국가사업인데요, 이 결과는 각종 국가 통계에 활용되고 또 정책 수립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조사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점 알고 계셨나요? '호구조사'라는 이름의 옛 인구 조사는 삼한시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호구조사를 3년에 한 번씩 실시했는데요, 지방 관리들이 관할 지역을 돌며 인구 현황과 가구 형태를 전수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정부는 이 조사결과를 모두 취합해 '호적대장'이라는 기록으로 정리했습니다. 컴퓨터도 전산망도 없던 시대라는 걸 생각해보면... 사실 호구조사는 인구 수 조사보다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 수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습니다. 때문에 아동 인구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허위신고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정확한 통계자료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당대의 대략적인 인구 증감추세 정도를 파악하기에는 굉장히 좋은 자료이지요. 그런데 이 호적대장을 보면 눈에 확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헉 놀람 바로... 100살을 넘게 산 노비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인데요. 심지어 1700년대의 기록에는 200살을 넘긴 노비도 있습니다 현재 기준으로도 엄청난 장수이지만 평균 수명이 45세 정도에 불과했던 조선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불사조에 가까운 수준인데요, 좋은 것만 먹고 전국의 명의를 곁에 둔 왕들조차 100살은커녕 90세를 넘기지 못했는데 (조선시대에 가장 장수한 왕은 82세까지 산 영조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했을 노비들이 이처럼 탈인간 수준의 장수를 한 비결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일을 많이 한 탓에 생활근육이 발달해서? 노비들에게만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신묘한 장수 비결이 있어서? 돌쇠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매일 뒷산의 신기한 풀을 뜯어 먹었어요. 사실 그 풀은....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장수 노비'가 많이 발생한 건 바로 노비를 주인의 재산으로 보는 신분제와, 호구조사 방식의 허점 때문이었지요. 잘 알고 계시다시피, 조선시대의 신분제는 상상 이상으로 견고했습니다. 노비의 자식은 무조건 노비가 되었고, 노비는 가축이나 가구처럼 주인이 마음대로 바꾸거나 팔 수 있는 물건 취급을 받았습니다. 다만 노비의 유일한 장점(?)은 세금이나 부역의 의무를 면제받았다는 점인데요, 전쟁이 잦은 조선 중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이 원칙도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인력 충원이 급해진 중앙정부가 노비들에게도 부역과 병역 등의 의무를 지우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니 노비들로서는 양민과 똑같은 의무를 지면서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천시당하는 불합리한 처지가 되고 말았죠. 한마디로 그 신분을 유지할 유일한 이유가 사라진 겁니다. 그 즈음부터 전국 곳곳에서 도망치는 노비들이 늘어났습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는 한양 등의 대도시로 도망쳐 노비 신분을 숨기고 평민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지요. 양반들은 사람을 풀어 도망친 노비를 잡아들였고, 아예 전문적으로 도망친 노비를 쫓는 전문 추노꾼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쳤는지도 모르는 노비들을 다시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지요. 결국 많은 노비들은 그대로 주인집을 벗어난 채 '도망노'로 기록이 종결되고 맙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비를 잃은 주인들이 호구조사를 할 때 그들을 '살아 있는 거주민'으로 신고하면서 발생했습니다. 호적에 노비라는 기록을 남겨두는 한, 추후에라도 도망친 노비와 그 가족을 잡으면 그들을 다시 자신의 노비로 소유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3년에 한 번씩 호구조사를 할 때마다 현재 그 곳에 살지도 않는 도망노들을 계속해서 거주하는 것처럼 신고한 겁니다. 이름 옆에 '도망노'라는 표식을 남기는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호적상으로 100살, 200살을 넘기는 초 장수 노비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호적대장을 보았을 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노비는 대부분 도망쳤다 잡히지 않아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다가 언제 죽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호적을 만들어 다른 이름으로 살았을 수도 있고, 도망치는 과정에 사망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탈출에는 성공했기 때문에, 다시 그 집의 노비로 돌아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지요. 때문에 100살이 넘는 노비들의 기록을 보면 결국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심 다행스러우면서도, 수십 년 동안이나 그들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비'로 기록한 주인들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누구는 주인이 되고 또 다른 누구는 노비가 되었던 시대. 200살짜리 노비의 호적은 그런 신분제가 낳은 해프닝인 동시에,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었던 노비들의 열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