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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삼굴 [狡兎三窟]

리마즈로 2017. 3. 16. 08:47


교토삼굴 [狡兎三窟]
狡 : 교활할 교 兎 : 토끼 토 三 : 석 삼 窟 : 구멍 굴
꾀 많은 토끼가 굴을 세 개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교묘한 지혜로 위기를 피하거나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

교토삼굴[狡兎三窟]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는 여러 나라가
패권을 차지하려 싸워 혼란의 시기로 꼽힌다. 
혼란의 시기인 만큼 인재들은 나라를 넘나들며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정치에 몸담았던 유세객과 문인,
귀족들은 작은 실수로 멸문을 당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춘추전국시대에는 처세에 대한
성어와 이야기가 수없이 만들어졌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교토삼굴’이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는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를 해야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언뜻 처세에 대한 성어같지만 사실은 경영자들에게
최우선의 덕목으로 꼽히는 경영전략이기도 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역시 ‘비전 2020’을 발표하며
 ‘교토삼굴의 스마트 경영’을 내걸기도 했다.
토끼가 평소 3개의 땅굴을 마련하듯이 CEO 역시
경영환경 변화에 대비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각 시나리오별 대책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고사성어] 위기타개책 -유비무환. 거안사위. 교토삼굴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풍환(馮驩)은 제(齊)나라의 재상(宰相)인 맹상군의
식객(食客)이었다.
맹상군은 왕족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嬰)의 아들로
이름은 전문(田文)이고, 맹상군은 그의 호이다.
풍환은 본디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식객을 좋아한다는
말에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왔던 자다.
맹상군은 그의 몰골이 하도 우스워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받아주었다.
그러나 그는 괴짜였다.
맹상군은 그를 3등 숙소(宿所)에 배치했는데
고기 반찬이 없다고 늘 투덜댔다.
그래서 2등 숙소로 옮겨 주었는데 이번에는
수레가 없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1등 숙소로 옮겨 주자
그럴 듯한 집이 없다며 투덜댔다.
당시 맹상군은 설(薛:현재 山東省 동남지방)에
1만 호의 식읍을 가지고 있었다.
3천 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식읍 주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구를 보내 독촉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1년간 무위도식(無爲徒食)으로 일관(一貫)했던
풍환이 자청했으므로 그를 보내기로 했다.
출발할 때 그는
 “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 하고 물었다.
맹상군은 “무엇이든 좋소.
여기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라고 대답하였다.
교토삼굴 [狡兎三窟]

설에 당도한 풍환은 빚진 사람들을 모아서 
차용증을 하나하나 점검한 후 이자만 해도
10만 전을 받았다.
예상 외의 좋은 결과였다.
징수가 끝나자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여러분의 상환 노력을 어여삐 보고
모든 채무를 면제하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
그리고는 모아 놓았던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렀다.
차용증은 모두 재로 변하고,
사람들은 그의 처사에 감격해 마지 않았다.
설에서 돌아온 풍환에게 맹상군이
“선생은 무엇을 사오셨는가?” 하고 물어 보았다.
이때 풍환이 말하기를
 “당신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리입니다.
 차용증서를 불살라 당신을 위해 돈주고 사기 힘든
 은혜와 의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라 하였다.
그러자 이말을 들은 맹상군은 매우 마땅찮은 기색이었다.
1년 후 맹상군이 제나라의 새로 즉위한 민왕(泯王)에게
미움을 사서 재상직에서 물러나자, 3천 명의 식객들은
모두 뿔뿔이 떠나버렸다.
풍환은 그에게 잠시 설에 가서 살라고 권유했다.
맹상군이 실의에 찬 몸을 이끌고 설에 나타나자
주민들이 환호하며 맞이했다.
맹상군이 풍환에게 말했다.
 “선생이 전에 은혜와 의리를 샀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소.”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狡兎三窟].
 지금 경(卿)께서는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아직 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없이 잠을
 즐길 수는 없습니다.
 경을 위해 나머지 두 개의 굴도 마저 뚫어드리지요.”
그래서 그는 위(魏)나라의 혜왕(惠王)을 설득하여
맹상군을 등용하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실현할 것이며
동시에 제나라를 견제하는 힘도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마음이 동한 위의 혜왕이 금은보화를 준비하여
세 번이나 맹상군을 불렀지만 그 때마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응하지 말 것을 은밀히 권했다.
이 사실은 제나라의 민왕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아차 싶었던 민왕은 그제서야 맹상군의 진가를
알아차리고 맹상군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재상의 직위를 복직시켜 주었다.
두 번째의 굴이 완성된 셈이다.
두 번째의 굴을 파는데 성공한 풍환은
세 번째 굴을 파기 위해 제민왕을 설득,
설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게 만들어 선왕 때부터
전승되어 온 제기(祭器)를 종묘에 바치하도록 했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설혹 제왕의 마음이
변심한다 해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이것으로 세 개의 구멍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님은 고침안면 하십시오”
이리하여 맹상군은 재상에 재임한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아니했는데 이것은 모두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한 덕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풍환을 《戰國策》
제책편(齊策篇)〉에서는 ‘풍훤(馮諼)’으로 적고 있다.
이 고사는 불안한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로,
완벽한 준비 뒤에는 뜻하지 않는 불행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깨우침을 주고 있다.
교토삼굴 [狡兎三窟],《사기(史記),<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교토삼굴 [狡兎三窟]: 지혜로운 토끼는 굴을 세개를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