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 앞에서
오늘 산길을 걷는데
벌써 봄이 오는 듯 산비탈에서
파란 새싹이 꼬물꼬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겨울이구나 싶었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겨울은 어느새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바쁘고,
새로이 찾아 올 봄은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벌써 어느 담벼락 아래서는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피었다고 합니다.
아직 가을꽃도 지지 않은 곳이
많은데 벌써 봄꽃이라니요.
사람이 ‘세월 참 빠르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미
나이를 먹고 있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하루 종일 양지쪽에 앉아서
동네 친구들과 놀던 내 어릴 적 하루는
그렇게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긴긴 하루였는데,
어른의 하루는 너무나 순식간이고
눈 깜짝할 새이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였는지도 모르게
총알같이 지나가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 앞에서 겸손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시간 앞에서 고개 빳빳이 들고
건방 떨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아무리 기고만장한 사람도,
그리고 아무리 직위가 높은 사람도
세월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역대 대통령들 한 번 봐보세요.
생사도 모르는
이건희 회장 한 번 봐보세요.
살아서 세상을 호령하던 사람도
세월의 막다른 길에 서면
누구나 이렇게
초라해지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유한함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이 말년에
추해지는 법입니다.
지금 가진 권력이
새털 같이 알량하다는 것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말년이 괴로운 법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이가 들고
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좋은 점도 있긴 합니다.
아무리 어이 없는 경우를 당해도
화가 나거나 쉽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좋다고 해서 희희낙락하지 않고
안 좋다고 침울해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웃지요.
결국 이것도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좀처럼 화가 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화를 담당하는
뇌 부분에 굳은 살이 박여서
어지간해서는 화가
나지 않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종종
“너는 화가 안 나냐?”는 말도
종종 듣곤 합니다.
그렇지만 화를 내든 안 내든
모두가 지나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 죽는 일이 아니면
모두 괜찮습니다.
그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비록
안 좋아 보여도 나중에 보면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세상 살면서 화를 내면
결국 내가 상대에게 지는 것이니
길게 보고, 크게 보고, 넓게 보고,
내 마음을 잘 다스렸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만큼은
화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보는
그런 아침이기를 소망합니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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