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아름다운 이야기
코스모스
정채봉
차는 추석을 고향에서 보내고 돌아가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차가 역에 닿을 때마다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고 타는 사람들뿐이었다.
영산포, 송산리를 거쳐서 정읍을 지날 때는 이미 객실 통로에도
들어설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 아이가 젊은 부부의 눈에 띠인 것은 아이의 손에 코스모스 몇
송이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사람들 틈에서 꽃을 다치지 않으려고 버둥대고 있었다.
아이가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밀리는 것을 보다 못한
젊은 부부는 그들이 앉아 있던 자리를 좁혔다.
그리고는 아이를 불러서 그들 사이에 앉도록 했다.
“서울 가니?”
혼자서 가는 길이냐고 물으려는데 아이가 먼저 젊은 남자 쪽을 향하여
말했다.
젊은 부인이 먹고 있던 땅콩을 나누어주면서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저기 있는 소주병 제가 써도 돼요?”
젊은 남자는 병 속에 술이 남아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병을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가 빈 병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사람들을 헤치고
세면실 쪽으로 갔다.
얼마 후에 아이는 소주병에 물을 가득 채워가지고 돌아왔다.
아이가 거기에 코스모스를 꽂아 창가에 세워놓는 것을 보면서
젊은 부부는 마주보며 웃었다.
“그 꽃 누구에게 줄 거니? 엄마?”
젊은 부인은 다시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선셍님?”
자꾸 엉뚱한 사람만 늘어놓는 것이 속상했던지 아이가 말했다.
“스웨덴에서 온 제 동생한테 줄 거예요.”
“스웨덴이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이번에는 젊은 남자가 물었다.
“네, 저희 엄마랑 같이 왔대요.”
“저희 엄마라니? 그럼 너의 엄마가 둘이란 말이냐?”
아이의 작은 입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왔다.
“우리는 판잣집이 많은 도시에서 살았어요.
나무가 하나도 없는 돌산이 뒤에 있었어요,
이젠 동네 이름도 산 이름도 잊어버렸어요.
아버지가 날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엄마하고 크게 싸우던
것만이 생각나요.
아버지한테 매를 맞은 엄마는 우리를 끌어 안고 울곤 했어요,
어떤 때는 집에서 나가버리겠다고 벼르기도 했어요.
영희와 나는 엄마가 도망 갈까봐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엄마는 끝내......”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까봐 젊은 부인이 아이의 등을 쓸어주었다.
차창 밖으로 별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날 밤에도 아버지가 엄마를 막 때렸어요.
이상하게도 그 날 밤에는 엄마가 울지 않았어요.
영희와 나는 엄마 팔을 하나씩 나눠 베고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옆자리에 엄마가 없었어요.
변소에도 부엌에도 공동수돗가에도 가 보았어요.
그러나 엄마는 아무데도 없었어요.
아침 일을 나갔나보다고 기다려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저녁 밥 먹을 때가 지났는데두요.
영희를 업고 버스 정류장에 나가서 막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래도 엄마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어요.
그 때부터 내 동생 영희가 별명이 울보가 됐어요. ”
금강줄기로 짐작되는 개천이 달빛 속에 떠올랐다가는 사라졌다.
산굽이를 도는지 열차는 또 한 번 기적 소리를 울렸다.
“어느 날이었어요.
아버지가 시장에 가자고 했어요.
또 버스를 탔어요.
처음 가보는 굉장히 큰 시장이었어요,
아버지는 우리가 사 달라는 대로 모두 사 주었어요.
영희에겐 주름치마도 사 주었어요.
약장사들이 원숭이를 데리고 굿을 하고 있었어요.
원숭이가 재주넘는 것을 한참 구경하다 보니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 날 아버지를 부르면서 다니느라고
영희와 나는 목이 쉬어버렸어요.”
앞자리에 앉은 한 아주머니가 ‘쯧쯧’혀를 찼다.
젊은 남자가 아이의 손에 초코릿을 쥐어주었다.
“우리 영희가 이 초코릿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고아원에서 초코릿을 준다고 하면 울던 울음도 금방 그쳤어요.
그러나 고아원에 어디 이런 과자가 많이 있는가요?
어쩌다가 외국 손님이 오셔서 과자를 나누어주었어요.
그러면 나는 언제나 초코릿을 먹지 않고 숨겨두었다가 영희한테
주곤 했어요.
그런데도 영희가 자주 엄마를 찾으며 울었어요.
어느 날 원장 선생님이 절 불렀어요.
영희가 먼 나라로 입양가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나 처음에 싫다고 했어요.
우리 둘이 함께 있으면 언젠가는 엄마 아빠가 찾으러 올 거라고
우겼어요.
그 때 보모님이 말씀하셨어요.
외국에 가면 잘 먹고 공부도 많이 할 수 있고 영희가 좋아하는
초코릿도 실컷 먹을 수 있다고..
그 말을 듣고 기가 죽었어요. 나중에는 응낙하고 말았어요.
잘 먹고 잘 살고 대학까지 보내준다고 해서요.”
젊은 부인이 손수건을 꺼내 눈 밑을 눌렀다. 차창으로 불똥이
흘렀다.
“영희가 떠나던 날이었어요.
저는 전날부터 잠을 자지 못했어요.
속도 모르는 영희는 침을 흘리며 잤어요.
영희가 발로 차내는 이불을 덮어주다 보니 날이 새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 날 아침 어느 때보다도 일찍 영희를 데리고 개울가로
갔어요,
그리고는 오래오래 영희의 얼굴과 목을 씻겨주었어요.
머리도 빗겨주고, 내 머리핀을 뽑아서 꽂아주고......
그러나 영희가 막상 떠날 때 보니 내 손엔 영희한테 줄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생각다 못해 뒷마당에서 코스모스를 한 아름 꺾었어요.
떠나는 영희의 가슴에 코스모스를 안겨놓고 저는 도망쳤어요.
멀어져가는 찻소리를 들으며 창고 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들먹이는 아이의 어깨를 젊은 부인이 가만히 안아주었다.
열차는 대전을 지나고 있었다.
한참 후에 고개를 든 아이의 얼굴은 말끔히 개어 있었다.
“그래도 용케 동생을 다시 만나는구나.”
“저쪽에서 우리 고아원으로 연락이 왔어요.
영희 새엄마 아빠가 우리나라 구경을 왔는가봐요.
그 길에 영희도 왔대요.
영희네 엄마 아빠가 우리 둘을 한 번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편지가 원장 선생님한테로 왔대요.
그런데 보내온 사진을 보니까 저는 도저히 영희를 못
알아보겠어요.
키도 얼굴도 너무 많이 날라졌어요.
내 동생 영희가 아닌 것 같다고 하니까 원장님이 웃으셨어요.
헤어진 지 6년이나 되니 못 알아볼 것은 당연하다구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영희가 더 나를 못 알아볼 것 같아요.
영희는 그 때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 코스모스를 가져가는 거예요.
우리는 자라서 얼굴도 몸도 변했지만 영희가 떠날 때 안겨준
이 꽃은 해마다 같은 얼굴로 피거든요.”
젊은 부부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소주병에 꽂혀있는 코스모스를
보았다.
전에 없이 아름다워 보이면서도, 목이 가는 것이 그렇게 서글퍼
보일 수 없는 꽃이었다.
차가 서울역에 들어섰을 때는 차창에 어둠이 완전히 가셔 있었다.
푸르른 새벽빛이 걸쳐져있는 육교를 지나서 출구를 향하는 사이
아이 뒤엔 젊은 부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마치 아이를 호위하기나 하는 것처럼.
출구 밖에 늘어서 있는 마중객들과 거리가 좁혀지면서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마중 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찾아 서로 악수를 나누곤 했다.
아이가 막 출구를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저 쪽의 마중객들 가운데서 쏜살같이 달려 나오는 아이가 있었다.
바른 손을 마구마구 흔들면서.
아아, 깃발처럼 흔드는 아이의 손.
두 아이의 얼굴은 코스모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둘이 서로 끌어안는 순간 주위의 어른들은 모두 얼굴을 돌리었다.
해가 뜰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