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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

리마즈로 2017. 3. 10. 08:15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근대화의 상징이자 경제개발의 꿈을 실현시킬 신앙(信仰)과도 같은 존재였다. 19964년 12월에 독일의 아우토반(Autoban)을 달리며 첫 구상을 한 뒤 귀국해서도 틈만 나면 인터체인지 선형을 직접 그려가며 꿈을 가다듬었다.

1967년 4월에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건설계획이 발표되자 아직 고속도로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때 야당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재정파탄이 날 것이다” “부유층의 유람로가 될 것이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육군의 3개 공병단을 투입하며 공사를 강행했다. 정식 기공일자는 1968년 2월 1일이지만 이미 서울∼오산 간 공사를 3개월 전부터 진행할 정도로 설계와 공사를 병행해가며 서둘렀다. 이 때문에 428㎞의 도로는 2년5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밀어붙이기식 공사로 77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토지 헐값 매수로 재산권 침해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1970년 7월 7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부고속도로가 마침내 개통됐다. 박 대통령은 준공식에서 “가장 싼 값으로 가장 빨리 이룩한 대 예술작품”이라며 감회에 젖었다.

박대통령이 직접 스케치한 고속도로 구상도.

 

1970.7.7. 경부고속도로 완공 테이프를 자르는 박대통령 내외

 

 

박대통령과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박대통령의 집념은 조국근대화와 맞물려 직접 챙기고 공사를 독려하였다.

 



1968년도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 <천안-신사리>구간중 천안 삼거리 부근에서.(1968.12월 경)


작업중에 휴식시간에 건설 현장 팀원이 기념 사진


경부고속도로 현장의 박대통령